[AI] 해커톤에서 들은 AI 산업 강의, 그리고 내가 제일 먼저 싸질 것 같다는 생각
얼마 전 해커톤에서 AI 산업을 주제로 한 강의를 들었다.
처음에는 또 “ChatGPT가 세상을 바꾼다” 같은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결이 달랐다. 이 강의는 AI를 새로운 기술 하나로 보지 않았다. 대신 기술 산업의 플랫폼 전환, 거대한 자본 투자, 기업 안에서의 배치 방식, 그리고 산업 구조 변화라는 관점에서 AI를 봤다.
그래서 이번 글은 강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들으면서 개발자로서 내가 한 생각 위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특히 마지막에 강사가 던진 질문 하나가 며칠째 머리에서 안 떠나서, 그걸 풀어보려는 글에 가깝다.
AI는 또 하나의 플랫폼 전환이다
강의의 출발점은 이거였다. 기술 산업은 대략 10~15년마다 큰 플랫폼 전환을 겪어왔다. 메인프레임, PC, 웹, 스마트폰이 각각 그 시대의 중심이었고, 지금은 AI가 그다음 플랫폼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새 플랫폼이 온다고 이전 게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항공사나 금융권은 여전히 메인프레임을 쓰고, 다들 아직 PC를 쓴다. 다만 새로운 투자, 창업, 시장의 관심은 새 플랫폼으로 옮겨간다.
이 프레임으로 보니까 AI가 “내 코드를 도와주는 똑똑한 자동완성” 정도로 보이던 게, 갑자기 산업 전체의 중심축이 옮겨가는 사건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축 위에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지금 AI 수요를 폭발시킨 건 결국 코딩이다
강의에서 흥미로웠던 지점 하나는, 지금의 막대한 AI 인프라 수요를 가장 크게 밀어올린 사용처가 생성형 코딩이라는 것이었다.
개발자가 AI로 코드를 쓰고, 고치고, 테스트하고, 문서화하는 흐름이 빠르게 퍼졌고, 이 영역에서는 실제로 돈을 내려는 수요가 강하게 나온다고 했다. GPU,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같은 전례 없는 규모의 투자가 상당 부분 이 “코딩”이라는 비교적 좁은 시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게 있다. 요즘 코딩을 하는 사람은 개발자만이 아니다. AI에 관심 있는 일반인, 기획자, 마케터, 디자이너처럼 원래 코드를 안 짜던 직군의 사람들도 AI에게 시켜서 스크립트를 만들고, 간단한 웹페이지를 띄우고, 자기 업무를 자동화한다. “코딩”이라는 행위 자체가 더 이상 개발자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AI 수요를 밀어올린 이 코딩 시장은, 개발자라는 직군보다 훨씬 넓은 곳에서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매일 하는 게 그거니까. Claude Code로 블로그 자동화 스크립트를 짜고,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돌리고, 안 풀리는 버그를 같이 들여다본다. 그러니까 강의에서 말하는 “AI 수요의 본체”가 멀리 있는 빅테크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작업 화면 안에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좀 서늘하기도 했다. 코딩이 개발자만의 일이 아니게 됐다는 건, 내가 “코드를 짤 줄 안다”는 것만으로 갖던 자리가 그만큼 빨리 평범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바로 여기서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그 수요의 본체가 코드를 짜는 일이라면, 코드를 짜는 일 자체는 점점 싸지는 것 아닌가.
채팅은 만능 인터페이스가 아니다
그래서 그다음으로 와닿은 게 인터페이스 이야기였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은 AI를 ChatGPT처럼 채팅창으로 쓴다. 하지만 강의에서는 채팅이 모든 문제에 맞는 인터페이스는 아니라고 했다. 빈 화면에 질문을 입력하면서 자기 업무를 스스로 구조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툴 빌더”가 아니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AI는 단순한 채팅창을 넘어서, 특정 업무와 산업에 맞게 설계된 앱과 워크플로우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건 내가 요즘 만들고 있는 것들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야구 데이터를 다룰 때도, 사람들에게 raw 데이터를 던져주는 게 아니라 보기 좋은 화면과 흐름으로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델이 아무리 강력해도, 그 위에 “사람이 실제로 쓸 수 있는 형태”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남는다.
AI 도입은 툴 도입이 아니라 조직 재설계 문제다
가장 크게 관점이 바뀐 건 이 부분이었다.
강의에서는 기업이 AI를 도입하는 게 단순히 새 툴 하나 깔아주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회사 안에는 이미 거대한 기존 소프트웨어들이 있고, 수백 개의 SaaS와 수천 개의 내부 시스템이 얽혀서 돌아간다. AI는 그 위에 얹히기도 하고, 내부 기능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래서 AI를 제대로 들이려면 결국 일하는 방식 자체, 즉 조직 운영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자동화에 대한 오래된 사례 두 개가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버튼이 생기면서 엘리베이터 안내원이라는 직업은 사라졌다. 반면 회계 업무는 20세기 내내 자동화됐는데도 회계사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아졌다. 단순 계산이 자동화되면서 회계사의 역할이 세무, 감사, 분석, 전략 판단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즉 자동화는 직업을 없애기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직무는 없애고, 어떤 직무는 바꾸고, 어떤 직무는 오히려 키운다.
개발자로서 이 사례를 들으면서 솔직히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나는 버튼 때문에 사라진 엘리베이터 안내원 쪽인가, 아니면 역할이 위로 옮겨간 회계사 쪽인가. 그건 자동화의 속도가 아니라, 내가 어디로 역할을 옮기느냐에 달린 문제 같았다.
AI는 질문의 수준을 바꾼다
강의 후반부의 핵심은, AI가 단순히 답을 더 빨리 주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의 수준을 바꾼다는 것이었다.
예전 검색이나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지난달 매출은 얼마인가”, “어떤 상품이 많이 팔렸는가” 같은 질문이 가능했다. 그런데 AI가 들어오면 질문이 달라진다. “여러 데이터를 다 엮었을 때 고객이 구매를 망설이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가격을 바꿔야 하나 제품 설명을 바꿔야 하나” 같은, 단순 조회가 아니라 의사결정 자체의 수준을 바꾸는 질문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강사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을 했다.
AI가 코드를 쓰고, 문서를 만들고, 리포트를 작성하고, 내부 툴까지 만들어주는 시대가 되면 실행의 비용은 낮아진다. 그러면 더 중요해지는 건 실행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능력이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알고, 무엇을 자동화할지 판단하고, 나온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능력.
이 말을 듣는 순간, 앞에서 묘하게 걸려 있던 감정의 정체가 명확해졌다.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싸질 것 같다
강의 끝에 강사가 던진 질문은 이거였다.
“AI 때문에 우리 산업에서 더 이상 비싸지지 않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좀 뜨끔했다.
이 질문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답이, 솔직히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코드를 짜는 일, 그건 지금 가장 빠르게 싸지고 있는 일이고, 그게 내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해온 일이다. 그러니까 이 강의 프레임대로라면, 우리 산업에서 제일 먼저 안 비싸지게 되는 건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이다.
이걸 너무 비관적으로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안다. 회계사 사례처럼, 싸지는 건 직무 자체가 아니라 그 직무의 한 부분일 뿐이고, 역할은 위로 옮겨갈 수 있다. 모델이 인프라가 되고 가치는 그 위에서 만들어진다면, 나는 그 “위”로 올라가야 하는 거다. 온디바이스로, 앱으로, 사람이 실제로 쓰는 제품으로.
다만 그 이동이 자동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게 이 강의가 남긴 진짜 숙제 같다.
실행이 싸지는 시대에 내가 쥐고 있어야 할 건 실행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할지 아는 능력이라는 것. 코드를 더 빨리 짜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말로는 쉬운데, 실제로 그 근육을 어떻게 키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질문을 쥐고 간다
강의의 결론은 의외로 담백했다. AI에 대한 많은 질문의 답은 둘 중 하나라고 했다. 첫째, 아무도 모른다. 둘째, 지난번에 모든 게 바뀌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봐라.
인터넷 초기에 지금의 Google이나 Amazon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AI도 마찬가지로 최종 형태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주목받는 기술과 회사 중 일부는 사라질 거고, 일부는 살아남아 산업 구조를 바꿀 것이다.
처음엔 이 결론이 좀 허무하게 들렸는데, 곱씹어 보니 오히려 이게 위안이 됐다.
아무도 모른다는 건, 정답을 빨리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 내가 쥐고 가야 할 건 정해진 답이 아니라, 좋은 질문이다. 내가 만드는 게 코드인지 제품인지, 내가 안 비싸지는 쪽인지 비싸지는 쪽인지, 매번 다시 물으면서 가는 수밖에 없다.
해커톤에서 들은 짧은 강의가 답을 준 건 아니다. 대신 며칠째 안 풀리는 질문 하나를 손에 쥐여줬다. 그거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고 생각한다.